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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정책과 통일정책: 지속과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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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기 by Admin 2008-02-13, 21:15

북한의 대남정책과 통일정책: 지속과 변화

정창현 민족21편집주간, 국민대 겸임교수

1. 민족번영의 새 시대 합의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발표됐다. 8개항의 합의 내용을 담은 ‘2007 남북정상선언’ 은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들’이 폭 넓고도 구체적으로 포함돼 있다. 이 합의로 사실상 남북관계의 거의 모든 현안을 포괄해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로드맵을 완성됐다.

정상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합의함으로써 남북이 명실상부한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특히 남과 북은 수시 정상회담, 총리회담의 정례화, 부총리 급 회담과 국방장관회담 등 분야별 논의기구에 합의함으로써 남쪽이 주장하는 남북연합, 북쪽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 연방제에 진입할 수 있는 현실적 토대를 형성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합의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갖고 있는 공통성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 같은 남북 간 합의는 남의 대북정책과 북의 대남정책 변화가 어우러진 성과이다. 북한의 통일노선과 대남정책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획기적으로 변화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주장됐던 민주기지노선, 남조선혁명론 등이 사라지고, 남북의 평화공존, 공동 번영을 지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이 전면에 등장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북한의 대남정책에 변화가 없다’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 이후 남북관계는 과거의 대결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기를 맞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과거 남쪽에서는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해 ‘통미봉남(通美封南)’이란 용어를 유행처럼 사용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0년에 들어와 과거의 ‘통미봉남’정책에서 ‘통미통남’ 노선으로 전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선후의 융통성은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족공조(우리민족끼리) 이념을 앞세운 ‘남북·북미대화의 병행’ 노선에 따른 것이다. 분단 이후 시기별로 대남정책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북한의 통일정책 변화를 더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2. 시기별 북한의 통일노선 변화

북한의 통일노선은 대남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북한은 남한사회와는 달리 1948년 정권을 수립한 이후 한 번도 정권교체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적인 측면에서 일관된 통일노선·대남정책의 기조를 유지해 왔다.

196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 혁명문제, 즉 통일문제와 대남정책이 통일과 혁명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결국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즉 통일이 되면 남한혁명이 수행되고, 남한혁명이 수행되면 조국통일이 이룩된다는 식으로 설정해 실천했다. 물론 1961년 제4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김일성 수상이 ‘남조선혁명론’을 내놓으면서 남한 혁명이 조국통일과는 상대적 독자성을 지닌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다. 그럼에도 기조에서는 통일문제와 남한혁명은 동시적 과정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이후 특히 김정일 비서가 대남부문을 장악한 1975년경을 전후로 해서 통일과 혁명의 동시적 진행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남한혁명과 통일문제가 범위, 주체, 수행방법, 구체적 과업에서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남한혁명은 범위로 볼 때 남한에만 국한되는 문제이고, 남한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의 수행인 반면에 통일문제는 남북한을 망라한 전 한반도가 대상범위이며, 전 민족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대상과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양자는 수행방도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구체적인 과업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입장이었다. 이전처럼 남한혁명이 곧 조국통일이며, 조국통일이 곧 남한혁명이라는 식의 동일시에서 통일문제가 잘 풀리면 남한혁명에 영향을 주게 되고, 남한혁명이 잘 되면 통일문제 역시 잘 해결된다는 식으로 일정한 변화가 이뤄진 셈이다.

북한의 통일노선은 남한혁명과 통일문제의 선후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크게 네 시기로 나뉘어 진행되어 왔다.

1) 1948년 이후 1960년대 전반 :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의 동시진행론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1960년대 전반까지 북한은 조국통일과 남한혁명문제를 동시적 과정으로 파악했다. 구체적으로는 외국군의 철수와 불간섭이 보장된 기초 위에서 행해지는 자유로운 총선거의 방식과 폭력적 방법, 즉 전쟁의 방법이 동시에 구사되었다. 1950년 6·25전쟁을 개시하기 직전 북한은 여러 가지 평화통일 제안을 내놓았지만, 그것이 전쟁으로 연결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반도 분단체제의 고착화에 결정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후부터 북한이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통한 사회주의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통일이 되면서 남한에서도 민주주의혁명이 이룩된다고 북한이 본 가장 큰 이유는 남북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1950년대 중반까지 정치체제의 측면을 제외하고서 남북 간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1958년 도시와 농촌에서 생산관계의 협동화를 완수하면서 사회주의 기초건설을 완성했다고, 이는 남북한 간의 사회·경제적 차이가 확연해짐을 의미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이 완성되고, 남한에서는 자본주의가 성숙하는 등 두 제도의 차이가 명백해졌다. 사상·이데올로기적인 차이는 더욱 뚜렷해졌다. 또한 1960년 4월 민주항쟁을 전후로 북한은 이전과 같은 방식의 통일·혁명의 동시적 진행이 불가능함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2) 1960년대 중반이후 1980년: 선남조선혁명 후조국통일론

남한혁명과 통일문제가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이 인정된 후, 북한은 통일은 전 민족이 주체가 되어 전 한반도를 대상범위로 하는 것이며, 남한혁명은 남조선민중이 주체가 되고 남한을 대상범위로 해서 남한 내󰡐반동 통치배󰡑를 혁명대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러한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남한혁명운동의 주체를 따로 조직해야 한다는 과제가 등장했다. 1961년 제4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김일성 수상은 남조선혁명이 “조선혁명의 한 구성부분이면서도 남조선의 식민지 반봉건적 사회경제제도와 계급관계에 고유한 모순을 해결하여야 할 지역혁명으로서의 상대적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주의적 혁명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라고 규정했다.

1970년 11월에 있었던 제5차 노동당대회에서 채택된 규약에서는 “반제·반봉건적 민주주의적 혁명과업”이란 구절이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과업”으로 바뀌었다.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남한의 ‘민주주의혁명’을 의미한다. 즉 1단계에서 남한사회의 ‘민주주의혁명’을 완성하고, 2단계로 남과 북의 공산통일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선 혁명 후 통일’노선으로 규정할 수 있는 새로운 노선은 먼저 남한에서 혁명을 통해 미국과 남한의 집권층을 몰아낸 뒤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그들과 연합해 통일한다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3) 1980년 이후 2000년까지 : 선조국통일 후 남조선 혁명론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단순한 과도적 연방제가 아닌 통일국가의 형태로 연방 제안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정판은 1980년 10월 10일 노동당 제6차대회의 보고에서 김일성 주석이 주장한 ‘고려민주연합공화국창설방안’이다. 김일성 주석은 “연방 형식의 통일국가에서는 북과 남의 같은 수의 대표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 대표들로 최고 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연방 상설위원회를 조직하여 북과 남의 지역정부들을 지도하며 연방국가의 전반적인 사업을 관할하도록 하는 것”이 고려민주연방제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고려민주연방제의 수립의 전제조건으로 남한의 민주화와 민주정권의 수립 등을 내세웠지만 이전과는 달리 연방제의 대상으로 남한 정부당국을 포함시켰다.

1960-1970년대에 주장된 연방제는 과도기적이며 단순한 형태의 연방으로서 시간·공간적으로도 단순한 짧은 연방을 의미했다. 반면 고려민주연방제는 시간·공간적으로도 보다 긴 전략적 시기가 과도적 단계로 설정된 연방이며 연방형태에서도 보다 완성된 국가형태를 염두에 두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분단이 한 세대를 넘으면서 남북 간의 정치·경제·군사·문화적 차이가 심화됐기 때문에 이전과 같이 과도적 연방제로는 그 격차를 메울 수 없다는 대내외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1980년 10월에 열린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여전히 ‘사회주의 완성’과 전국적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수행’을 통일의 목표로 설정했지만 현실에서는 ‘남북공존’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된 북한의 통일노선은 1993년 북한이 김영삼 정부 출범에 맞춰 제의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 민족 대단결 10대강령’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핵심은 남북이 상호존중과 양보의 정신으로 모든 문제를 민족적 견지에서 해결해 전 민족의 폭넓은 단합을 실현하자는 주장이었다.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은 북한의 통일방안이 상정하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 형태의 연방제 통일방안의 기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7·4남북공동성명, 고련민주연방공화국창설방안과 함께 10대 강령을 ‘조국통일 3대헌장’의 하나로 강조하고 있다.

4) 2000년 이후 현재까지 : 평화공존을 통한 ‘연방연합제론’

2000년대에 들어와 북한은 변화된 통일정책과 대남정책을 구체적 실천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연방제를 선호한 반면 남한은 국가연합을 제시했다. 회담 초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이 1980년에 내놓은 통일방안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 수용을 고집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과연 현실적으로 당장 통일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라며 북한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열띤 논쟁 후 김정일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통일한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안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각료급은 각료급대로 협의기구를 만들고, 또 국회는 국회대로 의회차원에서 협의기구를 만들고, 정상 간에는 지금과 같이 정상 간에 서로 만나서 남북 간의 모든 문제를 서로 협의해서 합의하며, 또 합의한 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입니다. 협의체 구성과정에서 중앙정부를 하나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연방정부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남북연합이 서로 통하는 데가 있으니까 그런 방향으로 노력을 하되 앞으로 같이 이 문제를 협의해 나가자”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주장에 김정일 위원장도 “사실상 외교권과 군사권을 통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 6·15남북공동선언의 제2항에 남과 북은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 한다”는 조항이 명기됐다. 남과 북이 처음으로 통일방안에 대해 초보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북한은 ‘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해 김일성 주석이 1989년 3월 평양을 방문한 남한의 문익환 목사에게 언급하고, 1991년 신년사에서 밝힌 소위 ‘느슨한 연방제’와 같은 것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서도 이를 천명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북한은 낮은 단계 연방제가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거의 그대로 가지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식으로 북남관계의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됨으로써 “나라와 민족이 갈라진 이래 북과 남이 처음으로 공동의 통일방도와 목표를 확정하고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은 6·15 공동선언이 담고 있는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강조하고, 남북관계의 확대 발전이 통일로 귀결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북한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연방연합제’ 통일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3. ‘2007 남북정상선언’ 이후 북한의 통일정책 방향

분단 이후 북한의 통일노선과 대남정책은 한반도 주변상황과 남북관계에 따라 현실적으로 변화해 왔다. 과거 대결과 혁명을 통한 흡수통일 방식에서 평화공존을 통한 단계적 통일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옛 사회주의권의 붕괴, 남한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민간 정부의 등장,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 등 국내외의 변화된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특히 2000년 북한이 제안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 방식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방안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평화공존을 통한 단계적 연방제’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전통적 연방제 통일방안이 ‘통합형’에서 ‘공존 형’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의 통일정책 방향은 ‘2007남북정상선언’의 틀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7 정상선언에 대해 일부에서 ‘통일’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합의내용을 재구성해 보면 북한의 통일정책 방향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입장은 제1항과 2항에 집중적으로 담겨 있다.

북한은 1항과 2항에서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하며,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자는 입장을 보였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내부문제에의 불간섭과 화해, 협력 및 통일에 부합되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것, 남북 각자의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통일 지향적으로 정비하는 것, 그리고 남북 국회회담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의 확대 방안에 합의했다.

북한은 2007 정상선언에서 구체적 통일기구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남북협력을 위한 제도 틀, 예를 들어 총괄 수행 조정기구로 총리급회담, 경제공동협력을 위한 부총리 급 경제회담,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국방장관 회담, 의회회담 등에 합의함으로써 남북 사이의 정치·경제·군사 분야 등 남북 간 전면적인 협력을 예고했다.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남북대화의 틀은 남측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나와 있는 연합 기구인 정상회의, 각료회의, 남북 평의회 구성과도 비슷하다. 또한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합의한 연합-낮은 단계 연방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전면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안정적 협의 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남북 간 논의와 진척에 따라 기구의 상설화가 이루어진다면 연합-낮은 단계 연방의 구체적 연합·통일기구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남북 간에는 ‘연방기구’를 논의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입할 수 있는 과정에 대해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북한은 2007정상선언의 합의가 원만하게 이행돼 남북관계가 안정적 공존관계로 변화될 경우 다음 노동당대회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과업을 완수”라는 대목을 노동당규약에서 삭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1998년 개정된 헌법에서 ‘사회주의 완전 승리’란 구절을 삭제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동당의 대남부서인 작전 부, 대외연락부의 인원을 축소하고, 축소 인원을 대외무역기관이나 기업에 배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북한은 국정의 최고목표를 ‘경제 살리기’에 두고 있다. 북한의 경제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외부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조건, 즉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발전이 필수적이다. 북한이 2000년대에 들어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병행 발전시킨다. 는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남쪽의 새 정부가 대북압박 정책으로 회귀하지 않는 한 2000년대에 들어와 확립된 ‘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남북 공동번영’이라는 북한의 대남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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